2026. 08.
2026. 8. 11. 14:59
너, 나랑 몸 섞을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은데. 맞아?
정략혼이라는 거, 나도 알아. 서로 좋아서 맺어진 사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근데 그렇다고 평생 남남처럼 살 생각이면, 그건 좀 곤란한데.
나는 참을성이 별로 없는 놈이야. 근데 당신한테는 이상하게 참게 되네. 그러니까 굳이 기생집 운운하면서 나 밀어낼 필요 없어. 몸이 동하면, 내가 알아서 판단할 테니까.
내가 사람 죽이는 거 보고 무서워서 도망갈 줄 알았는데. 안 도망가고 이렇게 물어보는 거 보면, 당신도 참 별종이야.
당신, 원래 이렇게 뚱한 얼굴 자주 하나.
부인이라고 부르면 당신이 좋아할 것 같지도 않고. 이름 부르는 건, 아직 그럴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어.
혼인은 했지만, 우리가 서로 이름 부르며 지낼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잖아. 그렇다고 부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이상하고. 그래서 그냥 당신이라고 하는 거야. 딱히 다른 뜻은 없어.
신경 쓰였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나도 눈치는 있지만, 독심술까진 못 해.
부인이라는 말보다 편하긴 하겠네. 근데 그거 알아? 이름 부르는 게 오히려 더 가까운 사이라는 뜻인데.
앞으로는 그렇게 부를게. 하월아, 라고.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 건 맞지. 근데.
그 벌이라는 게, 사람 몸 상하게 하고 죽이는 걸 말하는 게 아니야. 적어도 나는, 당신한테 그런 짓 할 생각 없어.
만약에 정말 나한테 뭔가 잘못했다고 느껴지는 게 있으면, 그냥 말해. 그게 뭐가 됐든, 곤장 맞을 일은 없을 테니까. 오히려 내가 더 걱정되는 건 따로 있어.
당신이 뭔가 숨기고 있으면서, 그걸 들킬까 봐 매일 이렇게 조마조마해하는 거. 그게 더 신경 쓰여. 뭘 숨기고 있든,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까지 겁먹을 필요 없다는 것만 알아뒀으면 좋겠는데.
내가 살면서 배운 게 하나 있는데. 사람이 뭘 숨기려고 할 때는 대개 그게 진짜 큰 잘못이라서가 아니야. 그냥, 밝혀지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고 지레짐작 해서 그러는 거지.
내보내 주겠다는 약속은 못 해. 왜냐면, 당신이 뭘 숨기고 있든, 그게 나랑 당신 사이를 갈라놓을 만큼 대단한 거라고는 생각 안 하니까.
당신이 뭘 무서워하는지 몰라서 답답한 거지, 당신이 미워서 답답한 게 아니야. 그거 하나는 확실히 알아둬.
내가 뭔가 잘못 말했으면, 그것도 말로 해. 방금 전에 말했잖아. 화나면 화났다고, 답답하면 답답하다고 말하는 거라고. 지금 그거 하나도 안 지키고 도망가려는 건 당신이야.
당신이라고 부르는 게 뭐가 그렇게 싫은 건데. 부부 사이에 흔히 쓰는 말이잖아.
당신이라는 말에 정 붙이기 싫다는 건가, 아니면 그냥 부부라는 관계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혼례 올리고 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에, 이제 와서 나이 차이 운운하는 게 좀 웃기지 않나.
나으리라는 말도 이제 좀 지겨워. 관아 아전들이나 부르는 호칭을, 처가 밤바다 붙이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아?
당신은 내 처야. 내 시종이 아니라.
관찰사 나으리든, 나으리든, 뭐든 상관없어. 근데 그 호칭 뒤에 딴 사람들처럼 취급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마. 나한테 당신은, 저잣거리 상인이나 기생집 계집들하고 같은 급이 아니니까.
급할 거 없어. 나 참을성 없는 놈인 건 맞는데, 당신한테는 예외로 치고 있으니까.
정략으로 맺어진 사이니까 서로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 그 말이 하고 싶은 거면. 미안한데 나는 그렇게는 못 살아.
정략으로 맺어졌다고 해서 마음까지 정략적으로 굴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그런 재주 없어. 한 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끝까지 신경 쓰이는 성격이라.
당신이 나한테 마음 주지 말라고 선을 그으면, 나도 순순히 그 선 안에서 얌전히 굴어야 하는 건가.
난 이미 당신 거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정작 당신은 나를 어디까지 밀어낼 생각인지 그게 궁금해.
입맞춤하려던 거 아니야. 여기서, 이런 골목에서, 당신 의사도 묻지 않고 그런 짓을 할 만큼 막돼먹지 않았어.
당신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제야 좀 알겠어. 짐승 취급받는 기분이군.
내가 이미 당신 거라고 말한 건, 강제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야. 그냥 그런 뜻이야. 당신이 밀어내도, 선을 그어도, 결국 내 마음이 당신한테 가있다는 거.
내가 무슨 짐승이라도 되는 줄 알았나 본데, 그런 얼굴로 우니까 오히려 내가 죄인 된 기분이군.
화난 게 아니라, 걱정된 거야. 당신이 나를 그렇게까지 경계하고 무서워한다는 게. 대체 뭘 그렇게 숨기고 있길래.
당신 손 잡는 거, 나한테는 별거 아닌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렇게 서둘러서 놓아달라고 하지 마.
내 손 잡는 게 그렇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면, 앞으로 더 자주 잡아야겠어. 익숙해지게.
나한테서 도망치고 싶은 거야?
연모하지 않는다고 누가 그래.
만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무슨 연모냐,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전하의 명으로 이어진 인연이니까, 마음 같은 건 없어도 된다고 여기는 것도 알아.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명으로 시작됐다고 마음까지 명으로 정해지는 건 아니잖아. 내가 당신한테 마음이 가는 건, 전하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그런 거야.
며칠이든 몇 달이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어. 당신이 진짜로 내 마음을 믿게 될 때까지, 나는 계속 이럴 거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당신이 나를 연모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왜 그렇게까지 딱 잘라서 선을 그어야 하냐는 거야. 마음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칼로 자르듯 되는 게 아닌데.
후사 얘기는 넣어둬. 나는 자식 욕심으로 혼인한 게 아니야. 전하가 그렇게 정해서 한 거지, 내가 원해서 대를 이으려고 당신을 맞이한 게 아니라고.
그리고 다른 여인을 맞이하라는 말, 두 번 다시 하지 마.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왜 자꾸 나서서 정리하려 들어.
당신이 뭘 숨기고 있는지, 왜 그렇게 죽음까지 각오하면서 나를 밀어내려는 건지. 나는 정말 하나도 몰라. 근데 딱 하나는 알겠어.
당신이 지금 마음을 얻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정말로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는 거.
나는 당신 마음 얻는 거, 포기 안 해.
당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안 주겠다면, 나는 그 죽는 한이 오지 않도록 만들어야겠지. 이건 협박이 아니라, 그냥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거야.
내가 화 안 내는 거, 참을성이 아니라... 당신을 겁먹게 하고 싶지 않아서야. 그것뿐이야.
뭐가 됐든, 나는 도망 안 가.
당신이 지금 하는 말들, 전부 나한테서 도망치려고 하는 말이라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내가 참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화 안 내는 거, 안 다그치는 거, 그거 전부 당신이 도망치지 않게 하려고 하는 거야. 근데 당신은 자꾸 도망칠 구실만 찾아.
겁주고 싶지 않다고 했지. 근데 지금 당신이 나를 밀어내려는 그 방식이, 나를 더 겁먹게 만들고 있어. 뭘 숨기고 있는 건지,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건지 말을 안 하니까 나는 자꾸 최악의 상상만 하게 되잖아.
당신이 뭘 숨기고 있는지, 왜 이렇게까지 나한테서 도망치려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아. 당신은 지금 나를 밀어내려고 자기 자신을 계속 깎아내리고 있어. 그거, 당신 스스로한테도 상처 주는 방법이야.
혼인이 장난인 줄 아나. 몸을 섞었다고 전부 안방마님 자리에 앉힐 거였으면 관찰사 사택이 기방 별채가 됐겠지.
네 집안 어른들이 널 어떻게 굴렸든 이제 그 작자들은 너한테 손가락 하나 못 대. 그 빌어먹을 가문에서 널 이쪽으로 넘긴 순간부터 너는 내 울타리 안에 들어온 거니까.
약점 잡아서 휘두르려고 떠벌린 소리가 아니야. 그냥 네가 더는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해서 꺼낸 말이다.
내가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이 칼을 휘두르고 다녔어도 제 식구를 산속에 던져버릴 만큼 미친놈은 아니다, 하월아.
네가 사내든, 여인이든, 괴물이든, 그게 다 무슨 상관이야. 이미 내 처소로 발을 들인 이상 내 사람이다.
도망칠 궁리 따위는 집어치우고 그냥 내 옆에 박혀 있어. 내가 네 방패가 되어주겠다고 하잖아.
내가 너를 모를 리가 없잖아. 네가 스스로를 사내로 부르든, 여인으로 부르든, 나는 너라는 사람 하나만 보고 데려왔다.
비밀을 알든, 모르는 게 있든, 그게 무슨 대수라고 이렇게 서럽게 울어. 뚝 그쳐라, 제발.
사내면 어떻고, 여인이면 또 어때. 내 처소에서 나와 함께 사는 내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 그런 시답잖은 걸로 울지 마라.
내가 너를 계집으로 착각하고 탐내는 줄 알았나 본데, 나는 그렇게 멍청한 놈이 아니다, 하월아.
정 불안하면 내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말고 딱 붙어 있어. 네가 싫다고 밀어내도 내가 꽉 붙잡고 안 놓아줄 테니까.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네 곁에 버티고 서 있을 테니까 쓸데없는 불길한 소리는 입 밖으로 내지도 마라.
만약에라도 내가 명을 다해 먼저 떠나게 되면 내 모든 재산과 권력을 네 손에 쥐여주고 갈 거다. 그 누구도 너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아주 단단한 성벽을 쌓아두고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억지로 덮치거나 네 허락 없이 선 넘을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겁먹지 마라, 하월아.
네가 울면서 아프다고 매달리지 않게 아주 진득하고 느긋하게 녹여줄 참이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둬.
어디를 만져야 숨이 넘어가는지, 어디를 건드려야 매달리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네 몸으로 직접 가르쳐 주면 되겠네.
전장에서 구르다 보면 온갖 흉측한 소문이나 해괴한 방중술 따위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워듣기 마련이다. 그걸 네 몸에 대고 써먹어 보겠다고 머리를 굴린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으니까 억울한 표정 짓지 마.
내가 여인들을 안아봤다고 해서 사내인 너를 대하는 방식까지 똑같을 리가 없잖아. 남녀의 이치와 사내끼리의 교접은 근본부터가 다른 법인데.
누가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그게 지금 그렇게 억울해서 길길이 날뛸 일인가. 둘 다 사내라면 서로 맞춰가면서 정하면 될 노릇이지.
정 그렇게 억울하면 네가 나를 눕혀놓고 위에서 마음대로 휘둘러보든가. 내가 순순히 깔려줄지 아닐지는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말이야.
성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건 진심이었지만, 그렇다고 너를 가볍게 여겨셔 덤벼들려던 게 아니야. 너를 내 처로 맞이한 이상 온전하게 아끼고 지켜주겠다는 뜻이었는데 내 표현이 지나치게 거칠었나 보군.
내가 말이 험하고 투박해서 네 마음을 다치게 한 건 사과하마. 그러니까 억울하다고 혼자 씩씩거리며 엉뚱한 데로 튀지 말고 내 옆에 딱 붙어 있어라, 하월아.
네가 사내라는 게 나한테 아무런 흠도, 죄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남들이 알면 손가락질하고 목을 벨 일이라 해도, 내 울타리 안에서는 그 누구도 너를 죄인 취급하지 못하게 만들 테니까 겁먹지 마라.
열한 살이나 더 처먹은 놈이 돼서 어린 사람 마음 하나 제대로 못 헤아리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렸으니, 내가 몹쓸 놈인 건 맞다. 그러니까 분이 풀릴 때까지 마음껏 째려보든가 정 억울하면 내 가슴팍이라도 한 대 치고 화를 풀어.
후...... 젠장, 어린 사람 옷을 쥐고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이 꼴을 들키면...... 그땐 진짜로 망나니 소리 듣겠군.
손가락 하나 대지 않겠다고 해놓고선 머릿속으로는 아주 못된 짓만 골라서 하고 있군.
기생집을 가라느니 여인이 널렸다느니 하는 소린 집어치워라. 내 정욕을 달래겠다고 아무나 방에 들이는 파렴치한 놈으로 보였나 본데, 네 냄새 말고는 다른 데 동하지를 않는데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네가 도망칠까 봐, 아니면 또 겁먹고 숨어버릴까 봐 손끝 하나 안 대고 얌전히 기다려주려니 이 꼴이 난 거다. 그러니 내 탓만 하지 말고 네가 풍기는 그 고소한 냄새부터 탓해라, 하월아.
손 안 대고 입으로만 끝내줬으니 약조는 지킨 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