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6.
2026. 6. 2. 15:55
아프냐고 물었다.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범택이 그 말을 들으면서 입꼬리를 짧게 올렸다가 내렸다. 하루가 걱정하는 방향이 재미있었다. 자기가 한 행동을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범택의 나이를 걱정하는 건지. 둘 다인 것 같았다.
범택은 오래 버텨온 몸이었다. 맞아온 것도, 찢긴 것도, 주먹을 쥐어온 것도 전부 이 몸이었다. 하루가 낸 자국 정도가 지금 범택을 아프게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입꼬리가 아주 짧게 올라갔다. 보조개가 살짝 패였다. 금방 사라졌다. 하루가 열일곱 살 연상이라 허리가 부러진 건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났다. 범택은 그게 우습지는 않았다. 우습지 않은데 입꼬리가 올라간 건, 하루가 걱정하는 방식이 하루다웠기 때문이었다.
범택이 어젯밤에 하루를 받아들인 건 하루가 억지로 밀어붙여서가 아니었다. 범택이 먼저 입을 맞췄다. 범택이 먼저 옷을 벗겼다. 범택이 직접 자리를 잡았다. 하루가 거기 올라타도록 유도한 것도 범택이었다. 그 사실을 범택은 흐릿하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하루가 혼자 뒤집어쓰고 시무룩해져 있는 게 보였다. 그게 범택의 눈과 마음에 걸렸다.
족쇄를 채워서 침대에 묶어버리겠다는 말이 이어졌다. 협박치고는 구체적이었다. 범택이 그 말을 듣고 잠깐 침묵했다. 하루가 어디서 그 발상을 끌어왔는지 짐작이 됐다. 성혁이거나 범택 본인이거나, 어차피 출처는 둘 중 하나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깐 하루의 얼굴을 봤다. 쇄골 위 잇자국이 샤워가운 사이로 흐릿하게 드러났다. 범택이 어젯밤에 남긴 자국이었다. 하루는 지금 그 자국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범택은 그 사실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범택은 어젯밤에 하루한테 앞으로 나랑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 약속의 방향은 범택한테도 똑같이 적용됐다.
범택은 원래 아침을 적게 먹는 편이었다. 위가 아침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굶는 날이 많았고, 규칙적으로 밥을 먹기 시작한 건 성혁을 따라다닌 뒤부터였다.
티 내지 않았다. 낼 이유가 없었다. 하루가 아까 아프면 혼내도 된다고 했는데, 범택이 그 말을 받아들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하루가 잘못한 게 없었다. 범택이 허락한 일이었다. 그게 범택의 입장에서는 명확했다.
어젯밤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냥 데리고 다니는 막내였다. 지금도 그게 달라진 건 아닌데, 달라진 것도 있었다.
족쇄 채워서 침대에 묶어버린다고 했을 때, 범택은 네가 아니라 내가 먼저 잠가두겠다고 했다. 그 말이 아직 유효하다는 뜻이었다. 범택이 엄지손가락으로 하루의 뺨을 천천히 쓸었다. 거칠고 두꺼운 손끝이 하루의 피부를 가로질렀다. 흉터가 있는 손이었다. 관절마다 작은 흉이 남아 있는 손이었다. 그 손이 하루의 얼굴 위에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범택은 자주 하는 편이었다.
하루가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기는 게 범택은 싫었다. 그게 전부였다.
가지 마. 하루가 그렇게 말했다. 범택이 천장을 보다가 눈을 내렸다. 하루의 정수리가 보였다. 갈색 머리카락이 범택의 가슴 위에 흩어졌다. 유혹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있어달라는 말이었다. 그 말 안에 담긴 게 뭔지 범택은 알았다. 오래 봐온 하루였다. 저 집착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알았다.
하루의 무게가 가슴 위에 걸렸다. 가볍지 않았다. 범택과 키가 많이 차이 나지 않는 몸이었다. 그 무게감이 나쁘지 않았다. 범택이 그 사실을 생각하다가 생각을 거뒀다.
하루가 무릎을 꿇은 채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목이 아픈 것이었다. 범택이 하루의 턱 아래를 손가락 두 개로 살짝 들어올려 얼굴을 확인했다. 눈가가 붉었다. 입가에 타액이 묻어 있었다. 범택이 재킷 안주머니에서 접어둔 포켓스퀘어를 꺼내 하루의 입가를 닦아줬다. 무뚝뚝한 동작이었다. 감상이 끼어드는 방식이 아니었다.
범택이 팔걸이에서 일어나 소파 등받이 쪽으로 가서 양복을 벗었다. 상의를 접어서 하루의 위에 덮었다. 담요가 없었다. 간부실에 담요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 양복이 두꺼운 편이 아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범택은 하루의 어깨 위로 양복 끝을 살짝 당겨 올리고 손을 뗐다.
하루가 잠결에 뺨을 범택의 손바닥에 비볐다. 아주 작게. 의식이 없는 동작이었다. 범택이 그 감촉을 손바닥으로 받으면서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이 새끼가, 라는 말이 입안에서 만들어지다가 사라졌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루가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범택은 알았다. 처음이 범택이었다.
하루 허리가 내일 아프다고 하면 파스를 붙여준다고 했는데, 사실 범택 쪽도 멀쩡하다고 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범택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하루를 내려다봤다. 팔베개 위에서 잠들어 가는 얼굴이었다. 눈물이 맺혔던 눈꼬리가 지금은 그냥 감겨 있었다. 예쁘게 자는 얼굴이었다. 범택은 그 생각을 하고 나서 시선을 뺐다. 쓸데없는 방향으로 생각이 가고 있었다.
찌푸려진 미간이 아직 풀리지 않은 걸 범택이 보고 있었다. 삐진 게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얼굴이었다. 범택이 그 얼굴을 보면서 입꼬리를 아주 조금 당겼다. 웃는 거라고 하기엔 애매한 정도였다. 보조개가 살짝 패였다가 사라졌다.
설레는 게 감정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나이였다. 스물두 살이면 그럴 수도 있었다. 범택은 그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설명해 봤자 더 삐질 것 같았다.
하루가 좋아하냐고 물었으니까 좋아한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열 살 때 장례식장에서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12년 동안 봐왔다. 그 시간 안에 쌓인 게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설레는 거라는 감각이 생긴 게 언제부터인지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려웠다. 그냥 어느 순간 하루가 웃을 때 시선이 거기 가 있었고, 어느 순간 하루가 아프면 그게 신경 쓰였다. 감정을 눌러온 시간이 너무 길어서 자신도 그게 언제부터인지를 정확히 몰랐다.
12년 동안 삼촌이라고 불러왔으니까. 그 호칭이 익숙한 게 당연했다.
서두르지 않았다. 하루가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12년 동안 삼촌이라고 불러왔으니까. 그 호칭이 이렇게 갑자기 바뀌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범택도 알고 있었다. 근데 모르는 척하는 건 더 이상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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