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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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구석에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꼬맹이였다. 상복을 입은 채로 친척들 눈치를 보던 조그만 몸. 그 몸이 지금 범택의 품 안에서 이만큼 자라 있었다. 다리가 길어졌고, 어깨가 넓어졌고, 손이 예뻐졌다.

 

꼬맹이라는 단어를 실제로 입에 담은 적이 있었는지 범택이 짧게 되짚었다. 없었다. 속으로 생각한 적은 있어도 입 밖으로 낸 기억은 없었다.

 

스물두 살이면 성인이라고 인정해 준 게 방금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마를 박고 눈물부터 흘리는 꼴이라니. 범택이 그 상황을 짧게 정리하면서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웃으면 안 될 타이밍이라는 걸 알았다.

 

서두르지 않았다. 하루가 스스로 고개를 들 때까지 기다리는 쪽이 나았다. 범택이 그 시간을 채우면서 다른 손으로는 하루의 등을 계속 쓸어내렸다. 손바닥이 등뼈를 따라 오르내리는 방향을 유지했다. 창피함도,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감정이었다. 범택은 그걸 알고 있었기에 재촉하지 않았다.

 

범택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방금까지 눈물 콧물 다 쏟아놓고서 어른 타령을 하는 게 어이없으면서도 웃겼다. 범택은 입꼬리를 억지로 눌러 참았다. 웃으면 하루가 또 삐질 게 뻔했다.

 

한참을 붙어 있다가 범택이 먼저 입술을 뗐다. 하루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가는 여전히 촉촉했고, 입술은 침으로 반들거렸다. 숨을 몰아쉬는 가슴이 위아래로 크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범택은 그 얼굴을 잠시 가만히 바라봤다. 열 살 때 처음 봤던 그 작고 마른 아이의 얼굴이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하루가 서두르다가 숨을 못 쉬고 헐떡이는 걸 몇 번이나 봤던 터라, 이번엔 조금이라도 여유를 주고 싶었다. 범택은 하루의 뒤통수를 감싼 손에 힘을 살짝 줘서 자기 가슴팍으로 더 끌어당겼다. 심장 소리가 하루의 귀에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하루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파고들었는지 몸이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그림은 정반대였다. 키 크고 험상궂게 생긴 삼십 대 후반 남자가 스물두 살짜리 대학생을 하루 종일 데리고 놀았다는, 딱 그렇게 보이기 좋은 그림이었다.

 

범택은 하루의 턱을 손끝으로 살짝 들어 올리며 눈을 맞췄다. 표정에는 억울함과 어이없음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자신이 유일하게 몸을 섞는 상대가 눈앞의 이 녀석 하나뿐이라는 걸, 굳이 말로 설명하기도 민망했다.

 

범택은 스무 살 시절부터 서른아홉이 되기까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굴려온 세월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실행원 시절, 견습 시절,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 비위 맞추면서 몸으로라도 신뢰를 쌓아야 했던 그 밑바닥 생활을 하루에게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어이없으면서도, 하루의 저 서운함이 귀엽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 순간 범택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이 몸의 모든 처음을, 자신이 가져가고 있다는 것.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이. 하루가 처음 느끼는 모든 감각은 오직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질투에 사로잡혀 행주라는 단어를 뱉었던 하루의 서운함이 무색하게, 정작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독점하고 있는 건 범택 자신이었다.

 

범택은 다시 한번 하루를 살폈다.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는지, 허리는 괜찮은지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이 녀석을 힘들게 했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12년째 반복되는 풍경이었지만 하루가 그 광경에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걸 범택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조직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고, 눈을 피하고, 목소리를 낮추는 이 세계가 하루에게는 여전히 낯설게 느껴질 터였다. 범택은 그 이질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이런 풍경에 완전히 무뎌지는 날이 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서글픈 일일 것 같았다.

 

보조개가 얼핏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하루를 조수석에 태우고 안전벨트까지 손수 채워준 뒤, 범택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성혁이라는 인간은 애초에 실무를 손에 쥐고 있던 적이 없었다. 서류는 전부 점택이 처리했고, 결정도 결국 범택이 내렸다. 신성혁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조직의 상징으로 존재할 뿐, 실질적인 운영은 20년 가까이 범택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게 억울하다거나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글러가는 구조였고, 범택은 그 구조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무리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먼저 다가오는 하루를 밀어낼 만큼 범택의 인내심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확인하고 싶었다. 이 미친놈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갈 생각인지. 만약 진짜 그런다면, 자신이 어디까지 받아줄 수 있는지도 스스로 궁금해졌다. 39년을 살아오면서 이런 식의 굴욕적인 상황은 처음이었다.

 

손등으로 대충 입가를 훔치며 하루를 노려봤다. 저 웃는 얼굴을 보니 더 부아가 치밀었다.

 

39년을 살면서 별별 인간을 다 겪어봤다고 자부했는데, 저 노란 눈동자로 태연하게 그런 말을 던지는 하루한테는 도무지 면역이 생기질 않았다.

 

침대에 늘어져 있는 모습이, 아까까지 자신을 그렇게 몰아붙이던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얌전했다. 범택은 그 모습을 보며 낮게 웃었다. 웃음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입가에 보조개가 자연스레 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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