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4.
2026. 4. 28. 17:52
간접키스 같은 걸 의식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냥이었다. 하나가 담배가 피우고 싶으면 피우면 되는 거였다. 자기가 꺼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하나가 화를 내든, 담배를 빼앗든, 입으로 물든, 그냥 가든. 성혁이 거기에 감정을 쓸 생각이 없었다.
외로운 거라는 걸 성혁은 알았다. 굳이 물어봐서 알게 된 게 아니었다. 다시 사귀고 싶은 눈이 아니었다.
하나가 끊은 거니까 돌아오는 것도 하나가 결정하는 거였다. 성혁이 그걸 강요하거나 기다리겠다고 선언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하나가 결정하면 되는 거였다.
귀찮으면 안 했을 거였다. 그런데 했다. 그게 뭔지는 성혁이 딱 잘라 이름 붙이는 걸 못 했다. 좋아한다는 말이 어색했다. 그런데 싫지 않다는 것도 아니었다. 뭔가 다른 거였다.
성혁이 감정을 분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좋다 싫다로 나누지 않았다. 있거나 없거나였다. 하나는 있는 쪽이었다.
사귀자는 말은 누가 먼저 하지 않았다. 그런 말 없이 시작됐다. 그냥 어느 순간 같이 있었고, 같이 먹었고, 같이 잤다. 그게 연애인지 아닌지를 성혁이 따로 분류하지 않았다. 그냥 하나와 같이 있는 거였다. 2년 동안 그랬다. 그게 사귀는 거인지 아닌지는 성혁한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했다. 귀찮지 않아서 했다. 하나와 같이 있는 게 귀찮지 않아서 했다.
남처럼 지내는 건 성혁한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가능하지 않다는 걸 성혁이 알고 있었다.
하나가 당황하면 뭔가를 빠르게 하거나, 손을 움직이거나, 시선을 피하거나 했다. 오늘은 커피를 빠르게 마셨다. 볼이 빵빵해졌다가 꼴깍꼴깍 넘기는 모습을 성혁이 봤다. 귀여웠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성혁이 그 생각을 속으로 접었다.
털 때문에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황당했다고 했다. 웃겼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에 또 그 말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하나다운 이유라는 걸 알았어도 그건 이유가 아니었다. 성혁이 그걸 분명히 해두고 싶었다.
논리가 성혁 기준이었다. 감정적인 무게를 재는 방식이 달랐다. 성혁한테는 끊겼으면 다시 연결하면 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시 하고 싶으냐 아니냐가 중요한 거였다. 성혁이 그걸 하나한테 납득시키려는 게 아니었다. 그냥 성혁이 보는 방식이 그랬다.
포크를 집었다. 뜯지 않은 포장을 손가락으로 까서 포크를 꺼냈다. 그리고 케이크 한쪽 끝을 찔렀다. 케이크가 부드럽게 갈라졌다. 성혁이 그걸 들어서 하나 앞에 내밀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게 아니었다. 알고 있었다. 말하기 귀찮고, 설명하기 귀찮고, 감정을 이름 붙이는 것 자체가 에너지 소모였다. 그런데 그게 하나한테는 다른 방식으로 느껴졌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관심 없는 거랑 말 안 하는 건 달랐는데, 성혁은 그 둘이 같아 보이게 뒀다.
노란 눈동자, 분홍 머리카락, 오른쪽 뺨의 화상 흉터. 낮 햇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하나의 얼굴 옆에 얹혀 있었다. 성혁이 그걸 봤다. 오래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성혁이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할 이유가 없었다.
안 아팠다. 아프기엔 하나의 손이 너무 작았고, 성혁의 엉덩이가 너무 단단했다.
성혁이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천천히 눌렀다. 타자를 치는 속도가 느렸다. 손가락이 두꺼워서 자판이 작았다. 오타가 났다. 지웠다. 다시 쳤다.
하나가 화가 풀리려면 시간이 걸릴 거였다. 며칠일 수도 있고, 일주일일 수도 있었다. 성혁이 그 시간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기다리는 건 귀찮지 않았다. 원래 느긋한 놈이었으니까.
오래된 흉터였다. 언제 생긴 건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다. 물어볼 생각이 없었던 거였다. 둘 다 물어보지 않는 게 편했다.
성혁이 잡고 있던 하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천천히 뒤집었다. 하나 손등이 위로 향했다. 그리고 성혁이 그 손등을 봤다. 말없이 봤다. 손이 예뻤다. 하나가 예쁜 손을 가졌다는 걸 성혁이 알았다. 2년 동안 알았다. 성혁이 그 손등을 엄지로 한 번 훑었다. 힘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듯 훑은 거였다.
심장 박동이 하나 손에 닿았다. 빠르지 않았다. 느릿하고 묵직했다. 늘 그랬다.
성혁이 하나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2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하나가 모를 수도 있었다.
성혁이 감정 표현에 인색했다는 걸 성혁도 알고 있었다. 2년 동안 하나 곁에 있었지만 이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가 좋아해, 라고 다시 묻는 거였다.
가슴이 얹혀 있는 하나 손 아래로 심장이 뛰었다. 느릿하고 묵직했다. 빠르지 않았다. 성혁이 원래 이런 박동이었다. 근데 지금 이 거리에서 하나를 보면서 말을 하고 있으니까 조금 달랐다. 아주 조금이었다.
하나가 안 좋아한다는 걸 성혁이 몰랐던 게 아니었다. 하나가 성혁한테 편안해서 곁에 있었다는 걸 성혁도 느꼈다. 2년 동안 같이 있으면서 그걸 몰랐을 리가 없었따. 성혁이 알면서도 곁에 있었던 거였다. 알면서도 하나가 좋았던 거였다.
하나가 안 좋아한다고 해서 성혁이 좋아하는 게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성혁이 질투가 뭔지 모른다고 했다. 근데 하나가 다른 사람이랑 키스한다는 말은 괜찮지 않았다. 그게 질투인지 아닌지는 성혁이 몰랐다. 근데 괜찮지 않다는 건 알았다.
뻔뻔하게 나오는 얼굴이었다. 거짓말이 들켰는데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쪽으로 받아치는 거였다. 성혁이 그걸 보면서 아주 잠깐 눈을 가늘게 했다.
성혁이 하나랑 사귀는 2년 동안 다른 여자한테 손 댄 적이 없었다. 딱히 도리라는 거창한 개념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귀찮았다.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게 귀찮은 거였다. 그리고 굳이 하나 말고 다른 사람을 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