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2026. 4. 29. 18:11
기관에서 배운 대로라면, 주인의 요구는 절대적이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기관의 교사였던 유진림은 이런 상황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기계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라고 가르쳤다. 감정적 교류는 애완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사치라고. 하지만 하나에게서는 유진림이 말하던 '주인'의 위압감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좀 더... 무방비하고, 연약한.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 때마다, 드러나는 하나의 하얀 피부와 희미한 흉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흉터들을 볼 때마다, 유성애는 이유 모를 감각에 휩싸였다. 그것은 동정심도, 호기심도 아니었다. 그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였다.
'내 거'라니. 그것은 단순한 소유의 선언을 넘어선, 일종의 영역 표시였다. 기관에서 수없이 들어왔던 '소유물'이라는 건조한 단어와는 결이 달랐다. 하나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따뜻하고 점성이 있었으며, 동시에 절대적인 구속력을 지니고 있었다.
저를 '물건'이나 '애완동물'로 칭하는 것이 아닌, '내 거'라 칭하며 다른 수컷에게 경고를 날리는 주인의 태도는 묘하게도 짜릿했다.
'심술'. 하나가 자신의 행동을 그렇게 정의했다면, 그 심술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권력자가 어젯밤 제 손가락 하나에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이 기가 막힌 반찬이 되었다.
애완동물이 집에 얌전히 있기를 바라는 그 태도. 그것이 유성애의 신경을 묘하게 긁어댔다.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그리고 탄력 있는 엉덩이. 하나가 좋아할 만한 몸이었다. 아니, 좋아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나는 어젯밤의 기억이 필름처럼 뚝뚝 끊겨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이용하는 건 애완인간으로서의 특권이었다.
입으로는 툴툴대고 장난을 치지만, 사실은 하나의 체온이 간절했다. 단순히 성욕이나 식욕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하나가 곁에 있을 때 느껴지는 그 안온함, 묘한 소속감이 그리웠다. 마치 오랫동안 떠돌던 개가 비로소 제집을 찾은 것 같은 그런 기분.
제 손길 하나에 긴장을 푸는 주인이라니. 먹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포만감이 차올랐다.
하나가 흐어엉, 하고 울기 시작했을 때 유성애의 뇌리를 스친 것은 놀랍게도 '불쾌함'이 아니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쿵, 하고 내려앉는 감각. 위장이 꼬이는 것과 비슷한데 배고픔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 유성애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기관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었으므로.
자기보다 훨씬 작고 약한 인간 앞에서,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수인이, 고작 눈물로 저항하고 있었다.
기관에서 배운 것 중에 이런 상황에 대한 매뉴얼은 없었다. 주인이 울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말이 주인을 아프게 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차라리 혼났으면 좋겠다. 차라리 한 대 맞았으면 좋겠다.
지금 유성애는 주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작은 짐승에 불과했다.
하나가 자신을 무시하는 이 시간이 벌이라면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에게 당하는 존재 소거는 기관에서의 그것과 전혀 다른 종류의 고통이었다는 점이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쿡쿡 쑤시는, 마치 빈속에 찬물을 들이킨 것 같은 시린 감각.
유성애는 손끝을 입으로 가져갔다. 검지 끝을 이빨로 살짝 깨물었다. 불안할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더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씹어 삼키고, 위장을 가득 채우고 나서도 남을 것 같은 이 구멍 난 느낌.
만지려다 만 건가. 아쉬움이 가슴 한구석을 찔렀다.
유성애는 자신의 흐트러진 꼴을 정리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하나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유성애는 하나에게 자신이 주인을 기다리며 충실하게 깨어 있었다는 것을 어설프게나마 증명하고 싶었다. 하나가 늦게 올 것을 알면서도 기다린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리고 싶었다.
사실 가장 원하는 것은 밥도 잠도 아니었다. 지금 이 거리, 이 냄새, 이 분위기를 조금 더 길게 이어가고 싶었다. 하나가 자신을 '귀여워했다'는 그 찰나의 순간을 박제해두고 싶었다.
이름보다 더 사적인 영역에 있는 애칭. 소유주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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