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4.
2026. 4. 29. 19:01
유성애는 눈을 뜨고 있었다. 잠이 깊게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잠이 들었다가 깼다. 보통은 한 번 잠들면 웬만한 소리에 깨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달랐다. 뭔가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옆에 하나가 있다는 것.
소유주가 바뀌면 관계도 바뀌었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는 달랐다.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하나가 자기 이름을 부를 때 그냥 있게 됐다. 도망가고 싶거나 가만히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 있게 됐다. 유성애는 그 감각이 뭔지 몰랐다. 이름을 붙이려고 하지 않았다
분홍색 귀가 잠든 상태에서도 조금 보였다. 토끼 귀였다. 유성애는 그걸 보면서 처음에 하나가 귀를 숨기고 다닌다는 걸 알았을 때를 생각했다. 인간들이 겁먹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설명이 아직도 이상하게 남아있었다.
자는 척이었다. 유성애는 그걸 알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코골이 소리가 더럽게 못 미덥긴 했지만 그냥 들었다.
세상에 이 귀를 만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생각했다. 무영회 보스의 귀였다. 조직원들한테는 무영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귀를 지금 만지고 있었다. 유성애는 그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냥 하나였다. 귀가 분홍색이고 말랑한 것에 기댔을 때 기분 좋아하는 하나.
사랑해, 라는 말이 들렸다.
사랑해,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한 번 더 들렸다.
습관처럼 쓰는 말. 유성애는 그렇게 정리했다.
근데 정리가 됐는데 뭔가가 남았다.
뚱한 표정이 아직 남아있었는데 귀는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말과 몸이 따로 노는 것이었다. 유성애는 그 불일치를 보면서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는 걸 느꼈다.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수인의 귀는 정직했다. 말이 미워, 라고 해도 귀는 이쪽으로 기울었다.
고개가 빼꼼 들렸다. 가슴팍에 박혀있던 이마가 떨어지면서 하나의 얼굴이 나타났다. 유성애는 그 얼굴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을 느꼈다. 처져있던 귀가 쫑긋 세워졌다. 말 한마디에 귀가 저렇게 되는 게 아직도 신기했다.
좋아한다고 자주 말해도 된다고 한 건 유성애였다. 그런데 막상 연달아 들으니 뭔가 처리하는 데 한 박자가 필요했다.
유성애의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딱히 숨길 이유가 없었다. 숨기려 해봤자 하나의 손바닥에 그게 전부 잡히고 있었다.
심장이 빠른 게 당황한 것이라거나 특별히 동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몸이 반응하는 것이었다. 하나가 이 거리에 있고 딸기 냄새가 나고 방금 좋아한다는 말을 두 번 들었다. 몸이 반응하는 건 자연스러웠다.
하나의 귀는 특히 정직했다. 말로 미워한다고 해도 귀가 이쪽으로 기울었고, 시무룩하면 뒤로 처졌고, 지금은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곤두서 있었다. 유성애는 그 패턴을 머릿속에 넣으면서 하나의 노란 눈동자를 봤다.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가슴 위에 얹힌 하나의 손에 그게 다 전해지고 있었다.
하나가 뽀뽀해달라고 하는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하나가 먼저 입을 맞추는 쪽이었다. 해줘, 라고 요청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죽여도 된다는 말에 겁을 먹거나 물러나는 반응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말이 어떤 종류의 신뢰에서 나온 건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성애라면 배신을 해도 괜찮다고 했다. 배신을 안 할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 구조가 유성애한테는 낯설었다. 기관에서 22년을 보내는 동안 그런 신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소유주에게 받는 신뢰는 기능에 대한 것이었다. 마사지를 잘한다, 지시를 잘 따른다, 계산이 빠르다. 그런 종류였다. 하나가 지금 보내는 신뢰는 그 방향이 달랐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죽여도 된다는 말이 유성애한테는 묘하게 불편했다. 하나가 그 말을 쉽게 해도 되는 상태인 게 불편했다. 자신을 그 정도로 열어놨다는 게. 그 열어 놓은 자리에 유성애가 들어가 있다는 게. 처음 느끼는 불편함의 종류였다. 무기력하거나 귀찮은 방향의 불편함이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였는데 정확한 이름을 유성애는 지금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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