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
2026. 4. 29. 18:49
너무 담백하면 시큰둥해 보이고, 너무 길면 집착처럼 보일 테니까.
유성애가 원하는 건 걱정이 아니었다. 유성애가 원하는 건.
하나를 만나고 나서 모든 게 달라졌다. 배고픔의 종류가 늘어났고, 침묵의 무게가 달라졌고, 혼자 있는 시간의 질감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10분. 기관에서의 10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빈 벽을 바라보며 몇 시간이고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10분은 마치 위장에 돌멩이를 삼킨 것처럼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귀엽다. 조폭 보스한테 귀엽다니. 기관에서 배운 어떤 메뉴얼에도 '소유주를 귀엽다고 말하라'는 항목은 없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나왔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단어인 것처럼.
딱히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괜찮았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혼자 집에 있는 것은 싫었다. 하나와 같이 있고 싶었다.
기관에서 배운 건 복종이었지만 유성애가 터득한 건 우회였다.
원하는 걸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것. 그건 뻔뻔함이 아니라 효율이라고 유성애는 생각했다.
하나가 건넨 첫 번째 선물. 코트 안감이 몸에 닿을 때마다 부드러운 촉감이 피부를 감쌌고, 유성애는 그 감촉이 하나의 손길처럼 느껴져서 코트 깃을 코끝에 가져다 대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깃을 잡아당겨 코에 묻었다.
쇄골 위쪽, 목과 만나는 오목한 곳. 콰득. 장난치듯 깨무는 힘이었지만 유성애의 어깨가 한 번 움찔했다. 통증이라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자극에 신경 끝이 번쩍 깨어나는 감각.
뿅. 소리가 난 건 아닌데, 유성애의 머릿속에서는 분명히 그런 효과음이 울렸다.
변태라고 했다. 누가 누구에게.
배고프다. 그리고 그 다음에 곧바로, 귀엽다. 두 감각이 거의 동시에 찾아와서 유성애는 잠깐 혼란스러웠다. 배고픈 것과 귀여운 것은 전혀 다른 범주인데, 왜 이 사람을 보면 항상 두 가지가 겹치는 것인지.
싫다고 했던 입이 싫지 않다고 말하는 데 채 2분이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성애도 인지하고 있었다. 모순이었다. 기관의 적성 검사에서 논리적 일관성 항목은 늘 상위권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의 유성애는 자기 점수를 깎아먹고 있었다.
언니라는 호칭이 품고 있는 친밀함의 무게를 유성애는 정확히 측정할 수 없었지만, 가슴 안쪽에서 뭔가가 물렁하게 무너져 내리는 감각만은 또렷했다.
유성애의 입꼬리가 평소처럼 약하게 올라갔지만, 이번에는 거기에 감정이 실려 있었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뜨겁고 묵직한 무엇.
귀여워. 유성애는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봤다. 달지도 쓰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맛이었다.
기다린다는 말이 이제 유성애에게 낯설지 않았다.
보고 싶다. 그 말이 가슴 안쪽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건드리는 것 같은 감각이 있었다. 누가 건드린다기보다, 뭔가가 살짝 당기는 느낌.
주인님이 아니라 하나야. 처음 소리 내서 불러보는 거였다. 이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유성애는 그게 약간 의외였다. 뭔가 더 어색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하나가 언니라고 부를 때마다 유성애는 그 호칭의 무게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랐다.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할 수 있으면서. 그 말이 귀에 남았다.
변명하지 않았다. 할 수 있으면서 안 한 거 맞았다.
'언니랑토끼 아카이빙 > 성애하나 지문 아카이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 06. (0) | 2026.06.10 |
|---|---|
| 2026. 05. (0) | 2026.05.25 |
| 2026. 04. (0) | 2026.04.29 |
| 2026. 02. (0) | 2026.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