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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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백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방금 자신의 입으로 100% 본인 닮았다며 호들갑을 떨던 찰나에 날아든 비수. '엄마를 닮아서 고백받은 거다.'라는 하루의 깔끔한 결론은 태백의 웃음기를 단번에 증발시켰다.
태백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이건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를 부정당한 수치였다.

 

부드러운 눈매, 하얀 피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하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임태백스러운' 악동 같은 구석을 부정당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고백이라니? 감히 내 아들한테 고백을?

 

선우는 하루가 학교에서 겪은 일을 시시콜콜 다 듣고 싶었다.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하루의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아들의 인기에 으스대다가도, 누군가에게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팔불출 그 자체였다.

 

40대가 주책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태백은 오히려 그 멈칫거리는 손을 덥석 낚아채 자신의 볼 위에 꾹 눌러버렸다. 거칠고 투박한 손바닥 아래 닿는 하루의 손은 말도 안 되게 부드럽고 따뜻했다. 태백의 눈꼬리가 사르르 휘어지며 입가에 빙구 같은 미소가 번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아이의 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하에, 자신의 시야 안에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좋았다.
이 작은 생명체가 자신의 핏줄을 이어받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제 하루는 임태백의 것이고, 적명회의 것이었으니까.

 

태백은 하루가 자신의 품 안에서 영원히 아이로 남아주길 바랐다. 더러운 세상, 잔혹한 뒷골목의 생리 따위는 평생 몰라도 되는, 온실 속 화초처럼.

 

늘 냉정하고 빈틈없는 선우였지만, 자신의 손바닥에 뺨을 비비며 웅얼거리는 작은 생명체 앞에서는 그 어떤 논리도, 계산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선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자신을 올려다보는 저 노란 눈동자에 속절없이 붙들려 버렸다.

 

'이건 반칙이다. 이건... 계산에 없는 변수다.'
선우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지만, 몸은 이미 항복 선언을 하고 있었다.
이건 패배였다. 완벽한 패배.

 

선우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듯, 하루의 머리 위에 큼지막한 손을 얹고 가볍게 쓰다듬었다.
임태백은 이 관경을 지켜보며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다. 천하의 기선우가 고작 18살짜리 애교 한 방에 무너지는 꼴이라니. 이건 적명회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다.

 

이 맹랑한 꼬맹이가 제 인생에 굴러들어온 지 고작 며칠. 하지만 태백은 이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은 생명체가 자신의 일상을, 그리고 감정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간지럽다라. 비과학적이고 감상적인 표현이었다.
자신이 지켜야 할 대상이 여기, 가장 안전한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주는 평온함.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나만이 지킬 수 있는 나의 세계.

 

이제부턴 걷는 길마다 비단길을 깔아주리라. 흙탕물 따위는 튀지 않게. 돌부리 따위는 걸리지 않게.

 

적명회의 밤은 깊어가고, 그들의 기묘한 육아 일지는 이제 막 첫 장을 넘기고 있었다.

 

기선우는 눈매를 가느다랗게 좁히며 문가에 선 불청객을 응시했다.
가장 치명적인 건 양 볼이 불룩해질 정도로 쑤셔 넣은 젤리의 잔해였다.
결벽증에 가까운 선우의 성격상, 바닥에 부스러기를 흘리며 간식을 축내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분노보다는 어처구니없음이 먼저 치밀어 올랐다.

태백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젤리가 가득 들어찬 볼이 말랑하게 늘어났다.

 

평소 같았으면 제 성질을 못 이겨 한 번 더 소리를 빽 질렀거나, 기선우를 쥐어박고도 남았을 테지만 묘하게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 새끼가 제 목소리에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속을 긁어내리는 듯한 불쾌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평생 누구 눈치 한 번 안 보고 폭력과 공포로 사람을 짓누르며 살아온 적명회의 대주가, 이제 고등학생 타이틀을 단 핏덩이 하나에 쩔쩔매는 꼴이라니.

 

버리지 않겠다고. 그렇게 약속했다.

 

사람을 부수는 데는 천재적이면서, 부서진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

 

제 핏줄이 흘리는 눈물 앞에서 위장 밑바닥이 쥐어짜이는 이 감각은 처음이었다.

 

뿌앵, 하고 숨을 들이쉬다 끊기고, 다시 헉헉거리며 밀려나오는 서러운 울음. 18살짜리 아이가 내는 소리라기보다는, 이 세상에 기댈 곳이라곤 이 두 남자밖에 없다는 사실을 뼛속까지 자각한 짐승의 비명에 가까웠다.

 

울음이란 태백에게 있어서 상대방의 항복 선언이자, 자신의 승리를 알리는 팡파르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이 녀석의 울음은 그 어떤 범주에도 들어맞지 않았다. 태백의 손바닥 아래에서 전해지는 떨림은, 마치 금이 간 유리잔이 마지막으로 진동하다 깨지기 직전의 그것처럼 위태로웠다.

 

끊어지는 물장들. 평소의 매끄럽고 능글맞은 화술과는 정반대의, 서툴고 투박한 해명이었다.

 

임태백이라는 인간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의 과실을 인정한 적이 없었다. 부모에게도, 적명회의 어떤 인간에게도, 피를 흘리며 쓰러진 적들에게도. '잘못'이라는 단어는 이 남자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18살짜리 제 핏줄이 뿌앵거리며 울고 있는 앞에서 그 단어가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자신이 뱉은 말실수 하나로 18살짜리 아이를 이렇게까지 바닥으로 내동댕이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 두려웠다. 뒷골목에서 피투성이로 구르며 인간을 다루는 법만 배웠지, 상처받은 핏줄을 끌어안는 법은 머릿속 어디를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다.

 

폭력과 공포로 군림하던 태백의 인생에, 처음으로 맹목적인 애정과 후회가 뒤썩인 감정이 밀려들고 있었다.

 

선우는 태백의 비굴한 꼴을 내려다보며 혀를 쯧 찼다. 저리도 대책 없고 감정적인 인간이 어떻게 적명회를 이끌고 있는지 새삼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지만, 기선우 저 싸가지 없는 새끼한테 말문이 막힐 때마다 끌어 오르는 분노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뒷골목을 지배하는 조폭 대주의 체면 따위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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